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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20

인천 산업 역사 8편 - 부평은 왜 자동차 도시가 되었을까, 백마장과 교통 요충지의 탄생(1962) 군수기지에서 자동차산업의 메카로 발전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8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5편에서 조병창이 세워졌고, 6편에서 철조망 안쪽 주인이 바뀌었으며, 7편에서 담장 밖 골목 경제가 살아났습니다.8편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는 순간입니다.길이 먼저였는가, 공장이 먼저였는가.부평은 — 그 질문의 답이다. 백마장의 기억 — 말이 뛰던 벌판백마장(白馬場).지금의 산곡동 입구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1940년 인천부에 편입되면서 백마정(白馬.. 2026. 6. 19.
인천 산업 역사 6편 - 캠프마켓이 남긴 것, 에스컴과 철조망 안의 경제(1945) 부평을 집어삼킨 거대한 미군 기지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6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5편에서 그 공장이 — 전쟁을 위한 것이었음을 보았습니다.6편은 그 전쟁이 끝난 직후의 이야기입니다.1945년, 일본이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 다른 군대가 들어왔습니다.광복 이후 — 총 대신 달러가 들어왔다 1945년 8월 15일, 조병창의 굴뚝이 멈췄다.일본인 기술자들이 짐을 쌌고, 소총 생산 라인이 멈췄으며, 1만 명이 일하던 공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그리고 한 달.. 2026. 6. 18.
인천 산업 역사 7편 - 텍사스 골목과 신촌의 밤, 철조망 바깥의 달러 경제(1950) 부평 애스컴(ASCOM), 그리고 기지촌이라 불리우던 곳의 아픈 기억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7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5편에서 조병창이 세워졌고, 6편에서 철조망 안쪽 주인이 바뀌었습니다.7편은 그 철조망 바깥의 이야기입니다.기지가 만든 경제가 있었다. 그런데 — 기지 밖에서도 경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미 육군 군수지원사령부(Army Service Command). 줄여서 애스컴이라 불리우던 기지는 단순한 군부대가 아니었다. 병원,보급창,통신대,포로수용소 등.. 2026. 6. 18.
인천 산업 역사 5편 - 부평은 왜 군수도시가 되었을까, 조병창과 1만명의 기억(1939)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지이자 수탈의 배후지에서 군수도시로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5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5편은 그 흐름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꺾이는 순간입니다. 1939년, 부평. 공장은 이번에 — 전쟁을 위해 지어졌습니다. 공장은 물건을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그 물건이 총이었다. 공장은 물건을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그 물건이 — 총이었다.1883년 제물포가 열리면서 인천에는 탄산수 공장이 들어섰고, 성냥 공장이 들어섰으며, 술도가와 제분 공장이 .. 2026. 6. 17.
인천 산업 역사 4편 - 성냥 공장의 불꽃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4편입니다.3편에서 항구가 공장을 낳았습니다. 탄산수가 터지고 술이 빚어지고 밀가루가 쏟아졌으며, 4편은 그 공장들 사이에서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불꽃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성냥 한 개비. 그리고 그것을 만든 손들. 불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 안에서 다른 불이 켜졌다. 불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고, 그 공장 안에서 — 다른 불이 켜졌다.1917년 10월 4일, 인천 동구 송림동에 조선인촌주식회사(朝鮮燐寸株式會社)가 문을 열었다. 燐寸 — 도깨비불 인(燐), 마디 촌(寸). 조선 사람들에게 성냥은 아직 도.. 2026. 6. 17.
인천 산업 역사 3편 - 사이다 한 병이 시작한 근대 공업(1892~1950) 공업도시로의 진화 촉매제 사이다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3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습니다. 이제 그 항구와 철도 위에서 — 공장이 태어납니다. 3편은 쌀 한 톨과 탄산 한 모금이 만든 인천 근대 공업의 이야기입니다. 항구로 쌀이 들어왔다. 쌀이 술이 됐다. 술이 공업이 됐다. 항구로 쌀이 들어왔다. 쌀이 술이 됐다. 술이 공업이 됐다.그리고 어느 날, 탄산이 터졌다.인천 근대 식품 공업의 계보는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1889년 정미소 하나가 인천 중구 중앙동에 문을 열었다. 아무도 몰랐다. 그 정.. 2026. 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