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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산업역사12

인천 산업 역사 10편 - 바람과 햇살이 만든 소금, 산업화에 지워진 염전의 기억(1960) 자연에서 산업으로의 변화, 인천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10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5편에서 조병창이 세워졌고, 6·7편에서 철조망 안팎의 경제가 살아났으며, 8·9편에서 자동차가 도시를 삼켰습니다.10편은 그 모든 것이 덮어버린 것의 이야기입니다. 공장이 들어서기 전, 이 땅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이 사라지는 데는 —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 걸렸다. 소금의 도시 — 인천은 원래 흰 결정(結晶)의 땅이었다 1907년.주안 간석지 3천 평이 처음으로 염전으로 전.. 2026. 6. 20.
인천 산업 역사 9편 - 부평을 먹여 살린 자동차, 신진·새한·대우 30년의 기록(1962) 자동차 산업의 원조 기업들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9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5편에서 조병창이 세워졌고, 6·7편에서 철조망 안팎의 경제가 살아났으며, 8편에서 길이 자동차를 불러왔습니다.9편은 그 자동차가 도시 전체를 삼킨 이야기입니다.한 공장이 도시가 될 수 있는가.부평은 — 그 질문의 답이었다. 신진·새한 시대 — 이름이 바뀌어도 공장은 돌아갔다 1962년 8월, 새나라자동차가 부평에 준공됐다.연산 6,000대. 닛산 블루버드. 한국 최초의 본격 승용차.. 2026. 6. 19.
인천 산업 역사 8편 - 부평은 왜 자동차 도시가 되었을까, 백마장과 교통 요충지의 탄생(1962) 군수기지에서 자동차산업의 메카로 발전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8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5편에서 조병창이 세워졌고, 6편에서 철조망 안쪽 주인이 바뀌었으며, 7편에서 담장 밖 골목 경제가 살아났습니다.8편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는 순간입니다.길이 먼저였는가, 공장이 먼저였는가.부평은 — 그 질문의 답이다. 백마장의 기억 — 말이 뛰던 벌판백마장(白馬場).지금의 산곡동 입구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1940년 인천부에 편입되면서 백마정(白馬.. 2026. 6. 19.
인천 산업 역사 7편 - 텍사스 골목과 신촌의 밤, 철조망 바깥의 달러 경제(1950) 부평 애스컴(ASCOM), 그리고 기지촌이라 불리우던 곳의 아픈 기억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7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5편에서 조병창이 세워졌고, 6편에서 철조망 안쪽 주인이 바뀌었습니다.7편은 그 철조망 바깥의 이야기입니다.기지가 만든 경제가 있었다. 그런데 — 기지 밖에서도 경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미 육군 군수지원사령부(Army Service Command). 줄여서 애스컴이라 불리우던 기지는 단순한 군부대가 아니었다. 병원,보급창,통신대,포로수용소 등.. 2026. 6. 18.
인천 산업 역사 5편 - 부평은 왜 군수도시가 되었을까, 조병창과 1만명의 기억(1939)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지이자 수탈의 배후지에서 군수도시로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5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5편은 그 흐름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꺾이는 순간입니다. 1939년, 부평. 공장은 이번에 — 전쟁을 위해 지어졌습니다. 공장은 물건을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그 물건이 총이었다. 공장은 물건을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그 물건이 — 총이었다.1883년 제물포가 열리면서 인천에는 탄산수 공장이 들어섰고, 성냥 공장이 들어섰으며, 술도가와 제분 공장이 .. 2026. 6. 17.
인천 산업 역사 1편 - 제물포 개항, 대한민국 공장의 조건이 태어난 날(1883) 1883년 1월, 조선 조정은 자기 손으로 항구를 열지 않았다. 열린게 아니라 뚫린 것이다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오늘부터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합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20편에 걸쳐 인천 산업의 뿌리를 찾아갑니다. 땅을 제대로 보려면 그 땅의 역사를 먼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편은 모든 것의 시작, 1883년 제물포 개항입니다. 왜 제물포 였는가, 바다가 문이었다면, 문 앞에 서있는 자가 먼저 집을 들여다본다 바다가 문이라면, 문 앞에 서 있는 자가 먼저 집 안을 들여다본다.1883년 1월 1일. 조선의 조정은 제물포를 열었다. 정확히는.. 2026.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