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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장매매34

인천 산업 역사 17편 - 남아있는 공장과 떠난 공장 사이, 인천 산업단지 공실의 구조(2026)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17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5~7편에서 부평이 군수도시로 태어났고, 8·9편에서 자동차가 도시를 삼켰으며, 10·11편에서 염전과 갯벌이 산업단지가 되었습니다. 12~14편에서 주안·부평·남동산단이 전성기를 누렸고, 15편에서 검단이 새 제조업의 땅이 되었으며, 16편에서 공장들이 떠나기 시작하였습니다. 17편은 떠난 자리에 남겨진 것들이 무엇을 말하는가입니다.공장이 비는 방식은 두 가지다. 소란스럽게 비는 방식이 있고, 소리 없이 비어.. 2026. 6. 23.
인천 산업 역사 14편 - 남동산단은 왜 성공했을까, 갯벌위에 세운 전국 1위 산단의 비결(1980)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14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5~7편에서 부평이 군수도시로 태어났고, 8·9편에서 자동차가 도시를 삼켰으며, 10·11편에서 염전과 갯벌이 산업단지가 되었습니다.12편에서는 주안산단이 먼저 왔고 먼저 늙었으며, 13편에서는 부평산단이 자동차를 보내고 전기전자를 맞이했습니다.14편은 그 모든 산단보다 늦게 왔지만, 가장 크게 자란 것의 이야기입니다.가장 늦게 태어난 것이 — 가장 많은 공장을 품었습니다.그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 이 편의 주제.. 2026. 6. 22.
인천 산업 역사 13편 - 자동차가 먼저 들어왔고, 나중에 전기전자만 남았다- 부평산단의 60년(1966)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13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5~7편에서 부평이 군수도시로 태어났고, 8·9편에서 자동차가 도시를 삼켰으며, 10·11편에서 염전과 갯벌이 산업단지가 되었습니다.12편에서는 주안산단이 먼저 왔고 먼저 늙었습니다.13편은 같은 시대에 태어났지만 다른 길을 걸어온 산단의 이야기입니다.부평산단.자동차가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자동차가 떠났다. 그 자리에 전기전자가 남았다.그것이 — 부평산단의 60년이다. 1966년, 부평 평야에 굴뚝이 섰다. 60.. 2026. 6. 21.
구로공단은 어떻게 제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그리고 왜 그 심장은 인천으로 이식됐는가 1967년 4월 1일, 허허벌판에 사이렌이 울렸다 1967년 4월 1일.서울 구로동, 준공식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말했다."허허벌판을 불도저로 밀어붙인다고 수출 공장이 되겠냐며 의심한 사람도 많았지만 우리는 결국 해냈다."맞는 말이었다.다만 '우리'가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그날 준공식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구로공단 1단지. 서울 구로동 한켠, 경인선 철도와 경인가도가 교차하는 저지대 논밭이었다. 항만(인천항)까지 25km, 노동력은 인근 영등포에서 끌어올 수 있었다. 땅값은 쌌다. 조건은 맞아떨어졌다.1963년 부지 선정,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 제정,1966년 착공, 1967년 준공.법이 만들어지고 공단이 가동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년이었다.첫 가동 기업 12.. 2026.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