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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산업 역사 9편 - 부평을 먹여 살린 자동차, 신진·새한·대우 30년의 기록(1962) 자동차 산업의 원조 기업들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9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5편에서 조병창이 세워졌고, 6·7편에서 철조망 안팎의 경제가 살아났으며, 8편에서 길이 자동차를 불러왔습니다.9편은 그 자동차가 도시 전체를 삼킨 이야기입니다.한 공장이 도시가 될 수 있는가.부평은 — 그 질문의 답이었다. 신진·새한 시대 — 이름이 바뀌어도 공장은 돌아갔다 1962년 8월, 새나라자동차가 부평에 준공됐다.연산 6,000대. 닛산 블루버드. 한국 최초의 본격 승용차.. 2026. 6. 19.
인천 산업 역사 8편 - 부평은 왜 자동차 도시가 되었을까, 백마장과 교통 요충지의 탄생(1962) 군수기지에서 자동차산업의 메카로 발전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8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5편에서 조병창이 세워졌고, 6편에서 철조망 안쪽 주인이 바뀌었으며, 7편에서 담장 밖 골목 경제가 살아났습니다.8편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는 순간입니다.길이 먼저였는가, 공장이 먼저였는가.부평은 — 그 질문의 답이다. 백마장의 기억 — 말이 뛰던 벌판백마장(白馬場).지금의 산곡동 입구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1940년 인천부에 편입되면서 백마정(白馬.. 2026. 6. 19.
인천 산업 역사 6편 - 캠프마켓이 남긴 것, 에스컴과 철조망 안의 경제(1945) 부평을 집어삼킨 거대한 미군 기지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6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5편에서 그 공장이 — 전쟁을 위한 것이었음을 보았습니다.6편은 그 전쟁이 끝난 직후의 이야기입니다.1945년, 일본이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 다른 군대가 들어왔습니다.광복 이후 — 총 대신 달러가 들어왔다 1945년 8월 15일, 조병창의 굴뚝이 멈췄다.일본인 기술자들이 짐을 쌌고, 소총 생산 라인이 멈췄으며, 1만 명이 일하던 공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그리고 한 달.. 2026. 6. 18.
인천 산업 역사 7편 - 텍사스 골목과 신촌의 밤, 철조망 바깥의 달러 경제(1950) 부평 애스컴(ASCOM), 그리고 기지촌이라 불리우던 곳의 아픈 기억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7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5편에서 조병창이 세워졌고, 6편에서 철조망 안쪽 주인이 바뀌었습니다.7편은 그 철조망 바깥의 이야기입니다.기지가 만든 경제가 있었다. 그런데 — 기지 밖에서도 경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미 육군 군수지원사령부(Army Service Command). 줄여서 애스컴이라 불리우던 기지는 단순한 군부대가 아니었다. 병원,보급창,통신대,포로수용소 등.. 2026. 6. 18.
인천 산업 역사 5편 - 부평은 왜 군수도시가 되었을까, 조병창과 1만명의 기억(1939)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지이자 수탈의 배후지에서 군수도시로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5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5편은 그 흐름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꺾이는 순간입니다. 1939년, 부평. 공장은 이번에 — 전쟁을 위해 지어졌습니다. 공장은 물건을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그 물건이 총이었다. 공장은 물건을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그 물건이 — 총이었다.1883년 제물포가 열리면서 인천에는 탄산수 공장이 들어섰고, 성냥 공장이 들어섰으며, 술도가와 제분 공장이 .. 2026. 6. 17.
인천 산업 역사 4편 - 성냥 공장의 불꽃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4편입니다.3편에서 항구가 공장을 낳았습니다. 탄산수가 터지고 술이 빚어지고 밀가루가 쏟아졌으며, 4편은 그 공장들 사이에서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불꽃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성냥 한 개비. 그리고 그것을 만든 손들. 불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 안에서 다른 불이 켜졌다. 불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고, 그 공장 안에서 — 다른 불이 켜졌다.1917년 10월 4일, 인천 동구 송림동에 조선인촌주식회사(朝鮮燐寸株式會社)가 문을 열었다. 燐寸 — 도깨비불 인(燐), 마디 촌(寸). 조선 사람들에게 성냥은 아직 도.. 2026.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