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업단지는 경제성장의 중심이었다. 구로공단, 울산, 구미, 남동산단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왜 하필 이곳에 공장이 들어섰을까. 1969년부터 조성을 시작한 구미국가산업단지 1단지가 들어선 그 자리는, 경상북도 선산군의 한 낙동강 변 모래밭이었다. 논이 있었고, 강이 흘렀고, 농부가 있었다.
국가는 그 위에 공장을 올렸다. 그리고 그 공장에서 나온 흑백TV 한 대가 — 대한민국을 전자 수출국으로 바꿔놓았다. 지금 그 자리에는 삼성전자와 LG 계열사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일부는 비어 있고, 일부는 새 주인을 찾았다. 그리고 국가는 다시 한번 그 땅을 반도체특화단지로 지정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다만 같은 장소에서 다른 이름으로 다시 시작된다.
구미를 선택한 이유 — 전자공업의 심장을 낙동강 옆에 박은 까닭
정부는 전자공업의 집중육성을 위하여 1969년 1월 28일 「전자공업진흥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에서는 상공부장관이 전자공업단지를 조성할 수 있고, 단지의 조성과 운영은 「수출산업공업단지 개발 조성법」을 준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1970년 8월 24일 청와대 수출확대회의에서 구미를 전자산업단지로 개발할 것을 결정하였다.
청와대 수출확대회의. 그 자리에서 구미가 호명되었다. 왜 구미였는가. 답은 세 가지였다.
첫째, 낙동강이다. 구미는 단지를 관통하는 낙동강을 수원으로 하여 하루에 33만 톤 이상의 물을 공급할 수 있어 공업 단지로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전자공업은 물을 먹는다. 세척, 냉각, 정밀 공정 — 어느 단계에서도 물이 없으면 공장은 멈춘다. 낙동강은 조건이었다.
둘째, 평탄한 지형이다. 지대가 주변과 비교할 때 비교적 평탄하여 공장용지 조성 비용이 낮았다. 국가는 예산을 아껴야 했다. 산을 깎거나 바다를 메우지 않아도 되는 땅. 그것이 구미였다.
셋째, 정치적 결정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 선산군과 불과 10킬로미터 거리. 이 사실을 우연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지금도 많지 않다


섬유에서 전자로 — 구미공단이 스스로를 바꾼 방식
1969년 3월에 착수하여 1973년 12월에 준공된 제1단지는 섬유단지로 출발한 일반단지와 전자단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지 면적은 1,022만 3,000㎡에 달한다. 출발은 섬유였다. 코오롱이 들어왔고, 한국합섬이 실을 뽑았다. 섬유산업은 1970년대 대한민국 수출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구미는 처음부터 섬유에 만족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국가가 만족하지 않았다.
1973년의 제1차 유류 파동은 제1단지 입주업체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고, 입주 예정이던 삼성전자를 비롯한 여러 업체들은 불경기를 이유로 입주를 포기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부가가치가 높은 전자공업의 육성이 강하게 요청되었다. 1974년 상공부는 구미공단 입주업체에 대한 조세 감면을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전자 업종을 포함한 40개 수출 전략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위기가 방향을 바꿨다. 유가 충격으로 섬유가 흔들리자, 국가는 전자를 밀었다. 조세감면 기간 연장, 수출 전략산업 지정 — 이 두 장의 카드가 구미를 전자산업의 땅으로 확정 지었다.1 공단이 주로 섬유산업의 비중이 높았다면, 2·3 공단은 전자업종의 대기업과 관련 중소기업이 주로 입주했고, 4 공단은 첨단 전자분야 중소기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단지가 세대교체를 했다. 공장 하나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업종을 바꾼 것이다.


삼성·LG가 구미를 만들었고, 구미를 떠났다
구미국가산업단지의 핵심 대기업은 LG와 삼성이었다. 두 회사의 이름을 빼고 구미의 전성기를 말할 방법이 없다. 2005년에 단일 산업단지 최초로 3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였으며, 이는 대한민국 수출액의 11%, 무역수지 흑자액의 84%에 해당하였다. 한 개 산업단지가 국가 무역흑자의 84퍼센트를 만들어냈다. 이 숫자를 21세기에 다시 꺼내 읽으면 현기증이 난다. 구미는 단지가 아니었다. 국가 수출기계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기계가 멈추기 시작했다. 2008년 수도권규제정책이 완화되면서 LG디스플레이가 경기도 파주로 이전하고, 삼성전자의 휴대폰 생산기지도 베트남 등 해외로 옮겨가면서 전자산업 메카로 명성을 날리던 구미공단은 쇠락하는 듯했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해외로 생산거점을 이전하는 등 구미를 떠나자 구미 시민들은 적잖은 배신감을 느꼈다.
'배신감'이라는 단어가 기사에 등장한다. 기업의 이전을 배신이라고 부른다면, 그 관계는 처음부터 착각 위에 세워진 것이다. 기업은 이윤을 따라 움직이고, 도시는 기업을 따라 성장했다. 기업이 방향을 틀 때 도시도 방향을 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구미는 그 준비에 10년을 썼다.

공인중개사가 읽는 구미 — 대기업 떠난 자리의 부동산 논리
산업단지에서 대기업이 빠져나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공장 용지가 대형으로 남는다. 1만 평, 2만 평짜리 부지가 시장에 풀린다. 그 순간 땅값은 내려가고, 임대료는 무너지고, 인근 상권은 죽는다. 구미 원도심 공실률이 높아진 시점은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본격적으로 라인을 줄인 2010년대 초와 정확히 겹친다. 우연이 아니다. 상관관계가 아니라 인과관계다.
그런데 2022년 12월 정부가 반도체·2차 전지·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 특화단지를 공모한 결과 구미는 반도체특화단지로 지정됐다. LG이노텍과 SK실트론·삼성 SDI 등의 대기업이 있어 반도체소재와 부품산업 단지로 선정될 수 있었다. 그리고 구미는 좌절하지 않았다. 혁신클러스터를 조성해서 새로운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5단지'를 '하이테크밸리'로 조성하는 등 변신에 변신을 꾀하고 있다.
반도체특화단지 지정은 구미 산업용지 시장의 변곡점이다. 인천에서 20년 가까이 산업용 부동산을 다뤄온 사람으로서, 특화단지 지정 이후 해당 지역 공장용지와 지식산업센터 수요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안다. 시차가 있다. 지정 후 2~3년이 실수요가 몰리는 시점이다. 구미는 지금 그 변곡점 위에 서 있다.
대기업이 떠난 자리에 부동산 기회가 없다고 보는 것은 절반만 맞는 판단이다. 대기업의 협력사 네트워크, 인력 풀, 기반시설은 대기업이 떠나도 남는다. 그 위에 새 산업이 얹히는 것이 특화단지의 논리다.
구미국가산업단지 단지별 현황
·
| 단 지 | 착 공 | 준 공 | 면 적 | 주력 업종 | 대표 기업 |
| 1단지 | 1969년 | 1973년 | 1,022만㎡ | 섬유 ·전자 혼함 |
코오롱, 삼성전자, LG전자 |
| 2단지 | 1977년 | 1983년 | 227만㎡ | 반도체 ·컴퓨터 | LG이노텍, 매그나칩 |
| 3단지 | 1987년 | 1995년 | 547만㎡ | 첨단전자 | LG디스플레이, 삼성SDI |
| 4단지 | 1998년 | 2006년 | 678만㎡ | 디지털 · 외국인전용 |
도레이, LG디스플레이 |
| 5단지 | 2008년 | 조성중 | 933만㎡ | 하이테크벨리 (미래형) |
- |
(출처: 구미시청 자료,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구미국가산업단지 핵심 이정표
| 연 도 | 사 건 |
| 1969.01. | 전자공업진흥법 제정 |
| 1970.08. | 청와대 수출확대회의 - 구미 전자단지 개발 결정 |
| 1973.12. | 1단지 준공 |
| 1974 | 조세감면 7년 연장, 수출 전략산업 40개 지정 |
| 2005 | 단일 산업단지 최초 300억 달러 수출 달성 |
| 2008 | LG디스플레이 파주이전 - 대기업 이탈 시작 |
| 2022.12. |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 |
(출처 : 국가기록원, 구미시청, 산업통상자원부)
낙동강 변 모래밭에 전자공업을 심은 나라가 있었다. 그 씨앗은 300억 달러짜리 열매를 맺었고, 열매를 따간 기업들은 다른 땅으로 갔다. 지금 그 자리에 국가가 다시 삽을 꽂았다. 이번엔 반도체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 다만, 항상 같은 장소에서 새 이름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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