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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인천 산업 역사 13편 - 자동차가 먼저 들어왔고, 나중에 전기전자만 남았다- 부평산단의 60년(1966)

by goldene 2026. 6. 21.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13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5~7편에서 부평이 군수도시로 태어났고, 8·9편에서 자동차가 도시를 삼켰으며, 10·11편에서 염전과 갯벌이 산업단지가 되었습니다.12편에서는 주안산단이 먼저 왔고 먼저 늙었습니다.13편은 같은 시대에 태어났지만 다른 길을 걸어온 산단의 이야기입니다.부평산단.자동차가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자동차가 떠났다. 그 자리에 전기전자가 남았다.그것이 — 부평산단의 60년이다.


1966년 부평 수출산업공단 기공식


 1966년, 부평 평야에 굴뚝이 섰다. 60년 후, 그 굴뚝 안에 전기전자가 남아 있다


조성 목적 — 1965년, 수출이 부평을 불렀다


1965년 6월.정부가 수출산업공단 조성계획을 추진하면서 1964년 구로동 일대가 선정되었지만, 인천시와 인천상공회의소 등 경제계가 정부에 부평을 별도의 공업지대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했고, 결국 '인천수출산업공단'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지정되었습니다. 갈산동과 청천동 일대를 포함한 약 21만여 평이 수출공업단지로 지정되었고, 1966년 4월 조성공사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같은 해 5월, 주안산단 기공식도 열렸습니다. 같은 법령, 같은 시대, 같은 목적으로 두 산단이 함께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두 산단은 이후 전혀 다른 산업 구조를 갖게 됩니다.그 차이를 만든 것이 — 자동차였습니다.

 

부평 신진자동차 생산라인

 

산업구조 — 자동차 벨트가 산단을 만들었다


1966년부터 공장의 입주가 시작되어 1970년 현재 47개의 기업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었습니다. 초기 입주 업종은 섬유, 전기기기, 플라스틱 제품 등 경공업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산단 바로 옆에 다른 거대한 힘이 이미 작동하고 있었습니다.1962년 새나라자동차 조립 공장이 부평구 청천동에 터를 잡은 이후 신진자동차공업㈜, 새한자동차㈜, 대우자동차㈜ 등으로 이름이 계속 바뀌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동차를 생산해 내며 부평을 지켰습니다. 한국 GM 부평공장이 자리를 잡으면서, 공단 안으로 자동차 부품 납품업체들이 줄지어 입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기계, 금속, 고무·플라스틱. 자동차 1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업종들이 부평산단이라는 반경 안으로 모여들었습니다.1970~80년대 부평산단은 사실상 한국 GM 부평공장의 협력 벨트였습니다.

 

 

자동차 벨트의 전성기와 균열


서울과 인천항 사이 드넓은 평야에 자동차를 비롯해 철강, 기계 등 중화학공업이 발달하면서 인천과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1980년대는 부평산단의 절정기였습니다. 대우자동차 전성기와 맞물려 협력업체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부평역 일대 상권이 팽창했으며, 인천 서북부 지역 고용의 중심이 이 산단이었습니다.그러나 균열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1973년 새한자동차로 개명했다가 1978년 대우그룹이 경영에 참여해 1983년에 대우자동차로 상호를 바꾸었고, 이후 한국지엠(2011년 3월 이후)으로 이어지는 자동차 공장의 연혁은 그대로 한국 현대사의 기록이며 인천 역사의 이정표입니다. 
IMF 외환위기(1997년) 이후 대우그룹이 무너졌습니다. 대우자동차 법정관리, GM의 인수(2002년). 자동차 본공장은 살아남았지만 협력업체들 다수가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자동차가 흔들리자 — 부평산단도 흔들렸습니다.

 

인천 부평 산단 전경

 

변화의 조짐 — 전기전자가 채운 자리


자동차 협력업체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운 것은 전기전자 업종이었습니다.KICOX 국가산단 업종별 고용현황(2025년 12월 기준)을 보면, 부평산단 전체 고용 인원 12,260명 가운데 전기전자 업종이 4,511명으로 36.8%를 차지합니다. 기계 업종이 2,033명(16.6%), 석유화학 1,729명(14.1%)으로 그 뒤를 잇습니다.운송장비(자동차 부품 포함) 고용 인원은 66명. 전기전자의 68분의 1 수준입니다.


수치가 말합니다. 부평산단에서 자동차는 이미 역사의 영역으로 들어갔고, 전기전자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수출 구조도 마찬가지입니다. 2025년 4분기 부평산단 수출 총액 2억 7,887만 달러 가운데 전기전자 비중이 1억 5,321만 달러로 54.9%를 차지합니다.먼저 자동차가 산단을 만들었고, 나중에 전기전자가 산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와 미래 — 1,861개 사가 서 있는 자리


2025년 12월 기준, 부평산단 입주업체는 1,861개사입니다. 가동업체는 1,857개사. 가동률 99.8%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가동률을 규모별로 보면 구조가 보입니다. 50인 미만 소기업 가동률 75.0% — 1,413개사,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기업 가동률 91.7% — 49개사, 300인 이상 대기업 가동률 87.3% — 2개사

입주업체의 96%가 50인 미만 소기업입니다. 중견·대기업 비중은 극히 낮습니다. 부평산단은 규모 면에서 전형적인 소기업 집적 구조입니다. 
이것이 강점이기도 하고 리스크이기도 합니다.부동산을 다루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 이 구조는 기회입니다. 소기업 집적은 임차 수요가 분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특정 대기업 한 곳에 종속되지 않습니다. 소기업 한 곳이 빠져나가도 산단 전체 임대 수요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2025년 4분기 생산실적 8,882억 원. 전분기 대비 1.2% 감소. 방향이 완전히 꺾인 수치는 아닙니다. 
60년 전 자동차가 이 산단을 열었고, 전기전자가 그다음 30년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다음 30년을 이끌 업종이 무엇인지는 —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정되는 방향에 따라, 부평산단 인근 준공업지와 공장 부지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땅은 산업을 기다립니다. 산업이 정해지면 — 땅값이 따라갑니다.


다음 편  예고

 

14편 — 남동산단은 왜 성공했을까

갯벌 위에 세워진 산단이 어떻게 전국 기업 수 1위 산단이 되었는가. 1985년 착공, 2025년 8,106개사. 그 40년의 성공 방정식을 데이터로 해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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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   /  토지  공장  창고  전문  /  인천  수도권  전문




1966년 부평 평야에 기공식이 열렸다. 자동차가 들어왔고, IMF가 흔들었으며, 전기전자가 남았다. 2025년 12월 기준 1,861개사, 고용 12,260명 — 부평산단 60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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