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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사업2

인천 산업 역사 14편 - 남동산단은 왜 성공했을까, 갯벌위에 세운 전국 1위 산단의 비결(1980)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14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5~7편에서 부평이 군수도시로 태어났고, 8·9편에서 자동차가 도시를 삼켰으며, 10·11편에서 염전과 갯벌이 산업단지가 되었습니다.12편에서는 주안산단이 먼저 왔고 먼저 늙었으며, 13편에서는 부평산단이 자동차를 보내고 전기전자를 맞이했습니다.14편은 그 모든 산단보다 늦게 왔지만, 가장 크게 자란 것의 이야기입니다.가장 늦게 태어난 것이 — 가장 많은 공장을 품었습니다.그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 이 편의 주제.. 2026. 6. 22.
인천 산업 역사 10편 - 바람과 햇살이 만든 소금, 산업화에 지워진 염전의 기억(1960) 자연에서 산업으로의 변화, 인천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토지·공장·창고를 전문으로 다루는 황금공인중개사 대표 전기봉입니다.「인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되었는가 — 개항장에서 AI산업까지, 인천 산업 150년의 기록」 10편입니다.1편에서 제물포가 열렸고, 2편에서 경인선이 놓였으며, 3·4편에서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5편에서 조병창이 세워졌고, 6·7편에서 철조망 안팎의 경제가 살아났으며, 8·9편에서 자동차가 도시를 삼켰습니다.10편은 그 모든 것이 덮어버린 것의 이야기입니다. 공장이 들어서기 전, 이 땅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이 사라지는 데는 —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 걸렸다. 소금의 도시 — 인천은 원래 흰 결정(結晶)의 땅이었다 1907년.주안 간석지 3천 평이 처음으로 염전으로 전.. 2026. 6. 20.